글리치: 어긋난 틈으로 열리는 세계                                               

  〈해리 포터〉에서 마법사가 순간 이동을 할 때, 잘못하면 신체 일부가 찢기면서 나머지 몸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일이 생긴다. 전시 도입부에 놓인 서누의 지문 드로잉은 누군가 디지털 공간으로 순간 이동하는 데 오류가 발생했다는 신호를 보낸다. 접속자가 지문 인식기와 접촉하는 오프라인 차원 A와 온라인 상의 목적지인 차원 B 사이에는 ‘사이공간in-between space’이 있는데, 원래는 여기서 데이터 대조를 통해 신원 확인이 이루어지고, 사전에 등록된 정체성이 재확인된다. 지문 인식 오류는 이런 매개와 식별 과정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리며, 안정적이고 동일하다는 의미에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사태를 가리킨다. 이때 안전하게 짝 지워지지 못한 생체 이미지는 몸에서 분리되어 가상 공간을 떠돌고, 오프라인의 신체는 한순간에 의미 값을 잃는다. 이런 오작동은 기술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불안의 일부로서, 레거시 러셀Legacy Russell이 ‘글리치glitch’라는 용어로 분석했던 현상이기도 하다. 발전된 기술로 안정성을 높인다 해도, 기계의 오류 가능성은 시스템에 구조적으로 내재된 위험이다. 글리치는 이런 위험을 상기시키면서, 보이지 않던 “디지털 스킨digital skin”과 그것의 하드웨어가 갖는 모서리와 솔기를 드러낸다. 서누의 디지털 드로잉과 회화, 손 모양을 변형한 아크릴 프레임 설치는 바로 이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단발적인 접촉을 포착한 것이다. 테이프를 붙였다 뗀 것 같은 화면, 이물질이 바람처럼 훑고 지나간 듯한 이미지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무엇이 휘발되거나 남아 있는지 묻는다. 
한편, 윈도우로 보이는 공동 작업은 관계 맺음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잡음을 표현한다. 두 작가의 손짓이 한데 중첩된 레이어에서 연결을 위한 충동, 마주침과 멀어짐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부유한다. 전시는 그 자체로 두 작가의 만남이 빚어낸 글리치다. 서로 가까이 다가갔다가 튕겨 나가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오류의 결과로 미지의 공간이 생기기도 한다. 분명한 경계 안에 머무르는 대신에 끊임없이 뛰어들어 접속을 시도하는 존재들. 어긋난 틈으로 열리는 세계에 당신을 초대한다.      
글: 홍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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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트 : 충동>
KEVE(구지언 & 서누 2인전)

2021.10.21.목.5pm ~ 10.27.수.5pm
청년예술청 화이트룸
글: 홍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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