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된 세계는 말하자면 인간이 자신의 망막으로 뒤덮은 세계다. 인간이 펼쳐놓은 막에 에워싸인 세계는 영구적인 자기반사로 이끈다. 막이 더 촘촘해질수록 세계는 타자로부터, 바깥으로부터 더 철저하게 단절된다. 디지털화된 망막은 세계를 영사막과 통제 화면으로 바꾸어놓는다. 이 자기애적인 시각의 공간, 이 디지털화된 내면성 속에서는 어떤 놀라움도 느낄 수 없다.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에 만족을 느낄 뿐이다.’1
방선우의 작업은 디지털 환경과 신체가 마주하면서 인식되거나, 혹은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에 대한 개인적인 경 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대인들은 각종의 디지털 시스템안에서 자유롭고 편리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설 상 시기를 알리지 않고 벌어지는 ‘오류’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 ‘디지털 리질리언스(Degital Resilience)’를 외치는 시대가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오류를 맞닥뜨리는 그 순간은 -이후 오류를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는 있어도- 즉각적으로 그 오류에 대응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경험에서 데이터가 신체 와 접촉하는 그 지점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불완전함은 이윽고 완전함에 대해 다시 되묻게 하고, 오류로 인해 명명되지 않은 그 익명의 누군가가 되었을때 비로소 데이터 기반의 온라인 시스템이 가질 수 있 는 그 한계를 명확하게 느끼게 된다. 방선우의 회화는 데이터 사이의 간극을, 다양한 매체로 시험하고자 시도한다.
작가는 신체 혹은 자연물의 그래픽 이미지들을 픽셀 단위로 확대하여 나누어 찢어 붙이고, 쌓고 겹치는 과정들을 반복하 는데, 그 결과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은 마치 어떤 충돌로 생겨난 파편들과 같아보인다. 완전한 형태가 아닌, 수없는 픽셀 의 분절로 만들어진 이러한 이미지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불완전한 개체들로서 현실에는 어떠한 이름으로 명명 될 수 없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파편의 형상들을 3D 렌더링하여 다시 입체적인 이미지로 만든 뒤, 이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행한다. 작가는 ‘이렇게 나타난 파편의 이미지가 주는 효과가 데이터 의 흔적 혹은 잔류처럼 보였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방선우의 회화적 실험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지점은, 익명의 존재가 되 었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명명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되묻고, 다시 본질로 되돌아가 무엇으로부터 이러한 감정이 피어났는지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며, 이 사유를 회화 안에서 자유롭게 탐구하며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작 가는 2차원 회화라는 평면 공간에서 겹겹의 레이어를 얹으며 재료가 줄 수 있는 깊이감에 대해 탐구하고 있으며, 작품이 놓여지는 그 공간에서 각 회화간의 깊이감을 다르게 조성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실험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도 환대받지 못한 흩어진 데이터의 기억, 오류가 불러 일으키는 미세한 감각을 조각과 설치로 변환하기도 한다.
작가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저주에 걸린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통해, 연못에 손을 뻗어 닿을때마 다 표면의 파동으로 자신의 원형이 흐려지는 것을 보며 기술 매체에 닿으면 닿을 수록 자신의 원형과 이별하게 되는 상황 에서 영감을 받아 이 전시를 꾸렸다. 더불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튤립 파동에서 새롭게 인식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Semper Augustus’의 서사를 가져온다. 바이러스로 색소 유전자가 파괴되며 만들어진 튤립은 또 다른 새로 운 튤립의 종으로 탄생하였고, 급기야는 아름다움을 새로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작가는 이 서사들을 바탕으로 오류로 빚어 진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그 서사를 해체하고 분절시켜보며, 마치 수면위의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려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원형을 상실한 뒤 남겨지는 부재와 오류의 의미를 재해석해보고자 함이다. 작가는 파동으로 새롭게 일어 나는 또 다른 파편들을 기꺼이 껴안으며, 끊임없이 세계를 은유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한층 더 작업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허다현)
1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이재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6, p. 44

글: 허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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