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동시에 잃어버리기》의 참여 작가는 공통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 그리고 체현된 몸에 대해 생각한다. 기술 문화 안에서 여러 존재들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형태를 갖추고, 경험하고, 의미를 지닌다.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구성하는 인간과 기술의 복합체는 끊임없이 하나의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 횡단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존재를 마주하지만, 어떠한 범주에도 속하지 않고 인식할 수 없는(혹은 못한) 타자를 놓치기도 한다.
본 전시는 각각의 세계를 다시 그리는 시도와 동시에 잃어버리는 무언가를 모색한다. 이는 서로의 세계를 호명하고, 실현하고, 수행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여기서 ‘그린다’를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뉜다. 첫째로, 그리는drawing 행위다. 작가는 붓으로, 손으로, 펜으로, 마우스로 ‘그린다’.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디지털 환경에서, 그리고 스크린을 넘어선 현실 세계에서 그리는 행위는 세계와의 접촉으로 ‘나’와 ‘외부’를 동시에 구성하고,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작업물은 몸을 매개로 서사를 만들고, 이는 필연적으로 물질적 결과로 드러난다. 주지하듯이 인간은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다시 그리는 동시에 잃어버리기》는 인간-기술 복합체의 물질적 수행과 생산을 통해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신체’란 무엇인지 재정립할 수 있는 실마리로 기능하고자 한다. 전시는 기술을 매개한 수행적 존재자들을 살피고 예술 안에서의 연결을 가늠하고자 한다.
둘째로, 전시는 우리가 무엇을 그리는지 ─상상하는지imagining─살펴본다. 기술 매체와 인간 신체의 재귀적 상호관계는 분명히 새로운 시야와 변화를 초래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언어와 서사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간혹 가상 세계가 현실보다 더욱 지리멸렬한 방식으로 타자에게 취약성을 드러나게 함에도 현실에서 ‘벗어난', ‘대체한', ‘바깥의' 세계로 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 단순히 언어와 선형적 서사로 재현될 수 없는 존재들을 전시라는 임시적인 시공간에서 감각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잃어버린다. 전시는 또다시 언어와 서사를 사용한다. 동시에 지배를 떨쳐내기 위한 길 잃기를 택한다. 또 기원을 좇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중의 상태를 수행하고자 한다. 이 실천은 결코 이론화할 수도, 가두고 정형화할 수도 없기에 이 불가능은 지속될 것이다.1 그렇게 계속해서 다시 그리는 동시에 잃어버린다.
1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방선우는 디지털 환경에 편입하지 못하고 불화한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류성에 주목한다. 양귀비 이탈화 시리즈는 '조선식물도감 유독식물편'에 등장하는 양귀비 그림에서 시작한다. 본 도감은 지극히 인간의 질서와 안녕에 도움을 주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기에 식물세계의 고유한 개별적 특이성은 소외되고 변질된다. 작가는 인공지능과의 상보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분류법으로 정립한 이미지를 생산한다. 인공지능 번역기를 매개하여 프롬프트를 완성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번역의 오류와 인공지능 생성 알고리즘의 블랙박스적 특성으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아르누보 양식과 사이버 공간의 메탈릭한 그래픽이 혼재한 생성 이미지(프롬프트: “그 식물은 차가운 사랑기계가 됩니다.” 등)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면서 비균질하고 불연속적인 시공간성을 내포하는데, 이는 기존 전통 도감의 단선적이고 순차적인 의식과 대비된다. 작업의 연장선인 AR 필터는 설치 작업 주변에 위치하면서 결코 완결되지 않는 형태를 지속하게 한다.

글: 송효진 
《다시 그리는 동시에 잃어버리기》
구지언, 김재, 김휘아, 방선우
2024.6.27. - 7.10.
교차공간 818
기획 | 송효진 
디자인 | 김재, 박현기
후원 | 평택시, 평택시문화재단,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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