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우는 식물 분류학의 역사적 맥락을 해체하며, 과거의 명명 방식과 그 속에 내재된 권력적 위계를 비판적으로 해석한다. 『조선 식물도설 유독식물편』에 수록된 식물 도상을 분석해, 도감이 가진 선형적 서술과 편집의 규범성을 비트는 동시에 기록 체계가 은폐해온 비가시적 존재와 서사의 틈을 파고든다.
식물을 계급화하고, 주변화되거나 소외된 존재들과 결합시킨 기존의 서사적 프레임을 전복하며, 시적 언어와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기존의 기록 회로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적 신화를 생성한다. 이렇게 탄생한 혼성 이미지는 드로잉, 페인팅, 펜던트 오브제 등 다층적 매체로 확장되며, 기록-해석-전달의 고정된 회로를 벗어난 재생산 불가능한 이미지로 전환된다.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달’은 은색의 구조체로 구현되어 식물 군집 사이를 유영한다. 역사적으로 억압되거나 타자화된 존재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온 달의 문화적 계보를 뒤집고, 이탈과 재조립, 자유와 순환의 동적 기호로 새롭게 작동시킨다. 달의 순환적 리듬은 식물의 생태적 네트워크와 우주적 규모의 천체 질서까지 아우르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기능한다. 예컨대 <궤적의 환상근>(2025)에서 식물 세포의 섬유질 조직(근)은 뿌리의 생태적 네트워크와 은하계 별들의 중력적 연결을 은유하며, 미시-거시의 이분법 해체를 가시화한다.
아카이브 작업인 <기억괴>(2025)는 소멸과 생성, 망각과 현존이 뒤섞인 괴(塊, 덩어리)로서, 기억의 층위와 경계가 꿈의 중첩처럼 펼쳐진다. 식물의 독, 별의 잔해, 눈물의 결정체 등 탈영토화된 존재들은 관계와 상실, 사랑과 소멸의 감각을 환기한다.
<희미한 꽃들의 이탈된 몽상 궤적>(2025), <궤적의 환상근>(2025), <잃어버린 망각으로의 이행>(2025), <유합된 호흡의 뒤틀림>(2025), <기억괴>(2025)에 이르기까지 작품들은 서로 다른 형식과 명칭을 부여받았지만, 단일 우주관 아래에서 서로 감응하며 움직인다. 식물 세포의 미시적 구조에서 우주적 스케일의 거시적 질서까지, 방선우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궤적을 추적하며 생태학적 상상력이 맞물린 총체를 체감하게 한다.


2025.06.07- 06. 29
《Archive Error: 기록의 바깥》 

곽한비 & 방선우 2인전
기획 및 서문: 이진선
주최 및 주관: 아트포랩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