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이 깨져서 모든 문장이 조각난 채로 보여 이게 유리라는 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깨진 스크린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알았지 물론 어디에나 유리가 있는 거야 [...] 유리의 방법을 유리를 이루는 물질을 생각하며 걷는다
(김리윤, 「유리를 통해 어둡게」 中, 『투명도 혼합 공간』, 문학과지성사, 2022.)
‘투명성’은 시각적 연결과 물리적 단절이라는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디지털 연합 환경의 얄궂은 특성을 참 명쾌하게 담아낸 단어가 아닌가. 인용 시처럼 오늘날 개인이 경험하는 세계에는 유리-스크린 매개적 감각이 은근하게 스며있다. 유리의 투명성은 왜곡과 이질감을 은폐하면서 안과 밖의 긴밀함을 강조한다. 시인은 같은 글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유리-수면을 깨뜨리는 자를 “다이빙 선수”로 묘사한다. 그렇게 투명한 표면 위로 뛰어든 다이버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은 물을 향해 파고든다. 이때 유리-스크린-수면 유비의 맥락에서 물속을 디지털 환경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회화 기반 작업을 만들어낸다. 강사이, 구지언, 방선우, 염기 남, 최재원이 동시대를 유영하는 방식은 다이빙보다는 ‘접영’을 닮았다. 왜 하필 접영인가? 이들은 물속-디지털 환경의 존재자들과 호흡을 나누고, 그곳에서의 감각 능력을 지닌 채 수면-스크린 밖 세계와도 여전히 맞닿아 있다. RGB(스러 운) 색감과 매끄러운 질감, 투명도 0과 100 사이의 농도.... 몸에 밴 디지털 매개적 감각을 현실 공간에서 각자의 문법 으로 물화한다. 접영의 특징을 하나 더 짚어보자면, 몸의 축을 적절히 이용하는 중심 이동 운동이라는 점이다. 스크린- 캔버스 표면 위아래로 만들어지는 수행적인 깊이감1은 각자가 위치 짓는 중심과 그 리듬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질감으 로 요약2 되는 스크린-수면 속의 이미지는 작가마다의 몸짓과 질량적 재료를 통해 다른 감촉, 부피의 외양을 갖는다.
방선우는 기억-데이터-세포를 아주 작은 조각까지 해체하고자 한다. 그렇게 한없이 잘게 쪼개는 과정을 반 복하다 보면 어느새 균열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며, 유실이 발생한다. 작가는 바로 그 오류 지점을 새로운 구 원이 피어날 자리로서 기꺼이 환대한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Semper Augustus’는 꽃잎에 금이 간 듯한 줄무늬를 가진 튤립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색소 유전자가 파괴되며 만들어진 변종이지만, 사람들은 그 병든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Bright Tulip_1, 2>(2023)의 튤립 형상은 ‘정보의 바다’ 가 아닌 ‘망각의 바다’에서 퍼져나가는 물결로 보인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존재론적인 망각은 익명성과 이어 진다. 작가는 익명의 존재로 온라인 공간을 표류하며 느끼는 자유로운 감각을 느슨한 추상 언어를 통해 오 프라인으로 불러낸다.

참조
1 Timotheus Vermeulen, 「The New “Depthiness”」, 『e-flux journal』, 2015.01., 
2 김리윤, 「글라스 하우스」 中, 앞의 책.
글 : 지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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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terfly Stroker
2023. 5 .10. (수) – 5. 20. (토)
12:00 - 20:00
안팎 스페이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 96-1, 2F

작가ㅣ강사이, 구지언, 방선우, 염기남, 최재원
기획, 글ㅣ지하운
디자인ㅣ방선우, 염기남, 최재원
주최ㅣ안팎 AnnPa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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