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서 돌기 시작한다—아니, 오히려 소리 없는, 공백의 상태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그곳’은 비 로소 출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소리 없는 공간 속에 소리를 들으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소리를 찾 아낼 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소리는 시각보다 먼저 도착한다. 온전하지 않고, 흐릿해 보이 기만 하더라도, 그곳은 있다. 어쩌면 ‘그곳’이란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 도 있으리라는 일종의 바람과 믿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서는 사람과 대상의 만날 수 없는, 즉 거리를 전제로 한 만남이 성사된다—그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 아닐까?”의 결말은 ‘아닐 수도’ 있다. 아니면 그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창작자와 감상자가 개입하는 ’‘여지’ 또는 ‘여백’이 있으므로 그곳이 세워진다는 사실이다. 방선우와 우수빈의 이인전 제목이 《무음》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두 작가가 이 소리 없음의 상태를 드러냄으로써 그 너머를—그곳에 가닿게 하기 때문이다.
공동(空洞), 즉 비어 있음을 통해서 그곳에/이라는 형태가 잡히기 시작한다. 공동은 방선우와 우수빈의 작 업을 받쳐 주는 내실인데, 이때 작품은 내막이 된다. 평면상에 감각적인 파편을 포착하여 담는 작업을 방 선우는 그동안 시도해 왔고, 껍데기나 뼈대처럼 세워지는 반입체에 균열이 보이는 작업을 우수빈은 시도 해 왔다. 방선우가 디지털 이미지의 오류에 주목하던 시선은 탈-범주화(작가의 말로 표현하자면 )’이탈화’ 를 바라는 꽃에 대한 관심사로 이행하였고, 우수빈은 거대한 역사와 개인적 경험 사이를 넘나들면서 작업 한다. 전자에서 오류와 탈-범주에 대한 관심은 작품에 힘을 모으기도 분산시키기도 하는 소용돌이 모양으 로 나타나고, 후자에서는 재료의 질감과 질감을 통해 떠오를 감각이 형상과 배경을 넘나든다. 전시 공간 은 비어 있는 곳, 즉 ‘그곳’이 슬쩍 보이게 만드는 장소가 된다. ‘무음’이라면—‘무’가 아닌 ‘무음’이라면, 그 상태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평면 회화와 껍데기처럼 나온 작품을 보고, 우리는 이곳으로 도달하기 전까지의 힘들을 떠올린다.
방선우와 우수빈의 움직임은 긴 시간축 사이에서 돌아간다. 가까이서 보면 움직이는 것들이, 멀리서 보면 전혀 움직이지 않아 보이는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가까이서 보면 움직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서 봤을 땐 움직임이 보이는 것처럼. 방선우는 작가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어둑한 파도를 지나 추락 한 하얀 별들]은 먼 훗날 꺼내 볼 기억의 파편이며, 내던져진 더미들의 악취 속에서도 피어난 하얀 꽃이 다. 그때는 다투라(Datura)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 ‘에코의 뼈’일지도 모르겠다고 믿었으며, 더 시간 이 지나 몰리(Moly) 일지도 모르겠다고 믿게 되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대상은 이렇게 저렇게 변하면서 믿음의 단계에 도달했다. 작품 화면에 우리가 보는 것은 그것에 다가가는, 그것이 그것이 될 수도 있는, 더 나아가 그곳에 있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우수빈의 작업 노트를 읽어 보면, 작품이 색상 그리고 감정과 대 조를 이룬다. 푸른색 바다와 아름다운 산호초, 동시에 작가가 그 장소로 가서 느낀 격렬한 감정. 이에 대조 를 이루는 미색의 작품을 보면, 그것은 오히려 바닷가에 널브러진 죽은 산호들에 더 가깝다. 격전지 오키 나와의 도카시키섬을 다녀오면서 작가 노트에 남긴 강렬한 인상은, 뼈나 껍데기와도 유사한 작품에 붉은 색과 푸른색 없이, 삶—과 그 밑에 깔려 있는 죽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일지도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둘 다가 계속 번갈아 가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회전문은 반쯤 열려 있기에 돌아간다. 그 틈새에, 그 문 너머에 또 다른 공간이 있음을 알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작품이라 는 내막은 너머에 있는 내실에 이미 닿아 있다.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기. 우수빈 작업에서 소묘된 장면과, 방선우 작업에서 흩날리는 화면에 인상은 깊이, 고이, 담긴다. 소리가 없다고 할 때, 그것은 사실 무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서 들리는 것은 무의 부재이다. 소리가 소리 없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귀기 울이게 된다—무엇에? 소리에, 더 나아가, 이곳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시간적으로도, 물리적으 로도 거리가 먼, 이방인이기도 친구이기도 하는 존재에게. 소리가 소리 없이 있을 때, 지금 있는 것 그대로 가 아닌,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시점을 끌어오게 된다. 방선우가 그려나가는 궤적, 우수빈의 균열 또는 틈 사이의 시각장. 시야가 확장하고, 그 찢어진 틈새에서 감각이 피어오른다.
무음사이에잠깐끼운말
콘노유키
2025.03.27- 04. 06
《무음_Silence: Restless in Stillness》
방선우 & 우수빈 2인전
포스터:염기남
서문: 콘노유키
예술공간 틈
콘노유키
2025.03.27- 04. 06
《무음_Silence: Restless in Stillness》
방선우 & 우수빈 2인전
포스터:염기남
서문: 콘노유키
예술공간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