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정적 그리고 공백화(化-花)

나는 고요 속에 드리우는 형상들의 궤적을 자주 상상한다. 정적은 때때로 굉음 만큼이나 큰 파동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런 감각은 정박된 것들은 어떤 삶의 결을 따라 이곳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그 궤적은 어떻게 현재의 형상을 지탱하고 있는지를 사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박-정적의 운율들은 끊임 없이 내 안에서 재구성되어 상상의 구조들을 만들어낸다. 섬광같은 의식과 상상은 갈무리된 기억들을 주조해나간다. 이런 기억들의 어수선함 속에 식물은 교차하고 싶은 태도로 다가온다. ‘중심 없는 중심으로 존재’하는 식물들은 터 사이에 정박한채로 기묘한 안정감을 남긴다. 공백 속에 존재하는 조화로운 감각들은 유랑하는 불안감을 의식하게 한다. 우리의 숨은 내뱉어지고, 그들의 숨은 스며든다. 나의 호흡과 그들의 호흡은 서로 혼합되어 내주고 뱉어진다. 숨의 일부가 펄프가 되어 관계의 층위들을 가로지른다. 서로의 숨이 만든 대기의 결을 의식하는 순간, 서로의 생을 매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혼합된 호흡의 차이를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또 다른 윤곽을 더듬어 나가며, 수 많은 존재들 사이를 연결하는 상상의 궤적을 그려나간다.

-다행이지 않아? 숨은 소유된 것이 아니야.

나는 의식적으로 식물을 마주하기 보다, 그들을 둘러싼 무의식적인 기억의 층위를 둘러보곤 한다. 식물에 관한 서사와 기록은 대게 단편적이여서, 서툴다. 그들을 직조하고 있는 서툰 기억의 편린들은 몽환적인 기시감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러한 기묘한 기억-몽상의 혼합물을 하나의 질료로 삼아 사건의 풍경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식물들은 마치 몽상 기계 속 씨앗이 된다.

나는 이 장치를 회화의 장면 속에 심고, 화면은 그로부터 파생된 다종적 이미지를 기른다. 식물과 행성, 생명과 기호 사이를 가로지르는 호흡의 궤적들은 화면 속의 이어지는 선의 형상으로 자리한다. 의도와 우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식물은 ‘괴체’가 되어 식별 할수 없는 모호한 종으로 나아간다. 이는 지시대상으로서의 기호가 결정될 수 없는 차이들로 재구성되어가는 상태들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2025년 12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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